태를지의 가을

 
▲ © 강성욱
 
코이카에는 봉사단원이 파견되고 나서 만 일년이 지나야 그 나라 밖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내가 작년 12월에 파견되었기 때문에 이번 추석에 집에 돌아갈 수 없다. 할 수 없이 가족들이 내가 있는 몽골로 오게 되었다. 여기에다 여행 계획을 짜다가 친하게 지내는 현주네 가족과 동반하게 되었다. 그런데 두 가족이 21일 몽골에 들어와서 현주네는 25일 아침 비행기로, 우리 가족은 29일 밤 비행기로 돌아가게 되어 일정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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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22일은 울란바타르 시내를 구경하고, 23일에 테를지 가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22일 울란바타르 시내에 차량 진입을 금지시키는 차 없는 거리를 한단다. 할 수 없이 22일에 테를지의 Баялаг хад 바야라흐 하드(부자 바위)’캠프에서 두 밤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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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를지는 울란바타르에서 가기 쉬운 관광지다. 울란바타르에서 중국과의 통로인 자밍우드로 가는 도로가 비록 2차선이지만 잘 닦여 있다. 이 길을 따라 30킬로미터 정도 가면 날라야흐라는 울란바타르 외곽 도시가 나온다. 여기서 좌측으로 테를지로 들어가는 갈래 길이 있다. 물론 이 도로도 잘 포장되어 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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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몽골 관광지는 가는 길이 매우 험하다. 비포장은 물론이고 길이 험해 승용차(사륜구동이 아닌)로 다니기 어렵다. 그런데 테를지는 승용차로 나들이 할 수 있는 몽골에서 거의 유일한 관광지다. 그리고, 여기는 시내버스로 갈 수 도 있다. 몽골교육대학교 부근의 대로에서 동쪽으로 가는 편에서 ‘X-5’번을 타면 날라야흐가 종점이다. 날라야흐에 내리면 테를지에 가는 버스가 있다. 태를지는 가기 편해서 몽골인들이 가족놀이 장소로 자주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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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를지의 산과 들은 완연한 가을이다. 낙엽송들은 노란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다. 산 허리는 샛노라졌다. 산자락에는 노랑과 연록이 겹쳐지고 있다. 우리는 캠프로 들어가는 동안 초원과 단풍에 물든 가을 산에 푹 빠져 들고 말았다. 설악산의 단풍과는 분위기가 다른 또 하나의 가을이다. 몽골은 여름에서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에 기온 변화가 심하다. 그래서 가을 풍경을 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날이 며칠 되지 않는다. 초원의 거센 바람이 순식간에 나무를 헐벗게 하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와 맞춰 온 우리의 운이 아주 좋았다. 우리가 테를지에서 나와 울란바타르로 돌아 왔을 때, 톨강 가의 보르가스(버드나무)들의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해진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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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를지의 숙소는 5성급 호텔에서 부터, 몽골 게르로 이루어진 여러 급의 캠프들이 있다. 게르 캠프는 시설 구비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 저렴한 캠프는 일인당 하루 만오천 투그릭이면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캠프의 게르에는 전기 조명등 하나는 있다. 그러나 휴대폰 충전할 수 있는 콘셋은 없다. 수도 시설도 물론 없다. 화장실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재래식 반개방형이 있다. 이런 곳에서 한국 관광객들이 머물기는 어렵다. 하지만 매력은 있다. 여기서는 보통 음식을 자기가 해 먹는다. 몽골에서 관광객을 태우고 다니는 차는 취사도구를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몽골에서는 반드시 병에 들은 생수를 마셔야 한다. 몽골 수도는 지하수를 사용한다. 여기 지하수에는 석회질이 많아 마시기에 적당하지 않다. 더구나 몽골에서는 음식으로 인한 배탈이 자주 발생한다. 식당에서 제공하는 음식만 의지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하루나 이틀 정도의 초원 여행이라면, 이런 게르에서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장보기 잔뜩 해 가지고 와서 밥도 해 먹고, 몽골 자연에 빠지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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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은 바야라흐 하드 캠프는 멋진 화강암 바위 아래 게르들이 배치되어 있다. 바야라흐는 부자(돈 많은 사람)라는 의미이고, 하드는 바위이다. 그러니까 부자 바위다.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의 투구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다. 한국에 이런 바위가 있다면 명물이 되었을 터인데, 멋진 바위가 지천에 널려 있는 테를지에서 이 정도는 별 것이 아니다. 캠프에는 대형 식당 건물과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실 건물이 있다. 그리고 이십여 개의 게르가 바위 주변에 지어져 있다. 게르 하나에는 침대가 다섯 개 있는데, 보통 서너 명이 묵는다. 식당에 천체 망원경이 몇 개 보인다. 굴절망원경 하나, 반사망원경 두 개다. 이 캠프는 야간에 천체 관측과 별자리에 관한 프로그램이 있다. 캠프에 온 관광객이 많으면 울란바타르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선생이 와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별캠프라고 부른다. 캠프 관리인은 한국어를 곧 잘 한다. 아마 한국인 전용으로 운영하는 곳 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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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의 하루 숙박비는 1인당 4만 투그릭이다. 조식은 4천 투그릭, 중식으로 몽골 보즈(만두)나 호쇼르(튀긴 만두)와 같은 몽골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데, 가격은 시내와 별 차이가 없다. 저녁 식사로 고기를 먹으려면 여기서 허르헉을 주문할 수 있다. 1인당 만오천 투그릭 정도 된다. 그런데 허르헉은 명성만큼 맛있지는 않다. 몽골에 갔으니까 한번쯤 경험상 맛보는 정도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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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바비큐가 제일이다. 테를지 입구에서 좌회전으로 틀기 전에 곧장 몇 킬로미터 직진하면 날라야흐 동네 델구르(상점)들이 있다. 여기에서 Мах(고기) 가게에 들어가면 바로 잡아서 손질한 고기를 싸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안내자 푸제가 바로 좌회전하는 바람에 테를지 입구 근처 가게에서 약간 비싼 양고기를 샀다. 그리고 테를지 입구 가기 전에 있는 대형 마트에서 바비큐에 필요한 알루미늄 구이판과 접시 등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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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에는 대형 바비큐 틀이 몇 개 있다. 게르 난로 불쏘기개로 쓰는 장작을 잘개 잘라 불을 피우면, 연기는 좀 나지만 멋진 바비큐 화로가 된다. 캠프에서 첫날 우리는 환상적인 바비큐 파티를 했다. 그런데 내가 기분에 취해서 과음을 하고 말았다. 아내는 현주네와 같이 늦게 까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여지없이 판은 깨졌다. 아이들은 별구경한다고 담요 두르고 언덕에 오르고, 나는 골아 떨어지고, 아내는 게르 난로 불과 밤새 씨름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여행 내내 아내에게 타박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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