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를 남기는 송내동 시골해장국 임성택 대표와 동 복지협의체

▲ 자원봉사자 양혜정 씨가 어르신에게 메이크업을 해주고 있다.

날이 덥다. 연신 부채질을 하며 어르신들이 모인다. 혼자 와서 어색함에 쭈뼛거린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과 이야기꽃을 피운다. 잔칫날이 따로 없다. 맛있는 음식과 흥겨운 음악은 없다. 대신 화장품과 한복이 있다. 옷걸이에 한복이 펼쳐진다. 오늘은 사진 찍는 날. 어르신들은 ‘장수사진’을 찍으러 부천시 소사동주민센터로 모였다.
 
시간이 다 됐다. 자원봉사자와 소사동주민센터 직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소사동주민센터 한 켠에 촬영 장소가 마련된다. 소사동주민센터 박삼채 복지팀장은 한 명씩 호명하며 어르신들을 챙긴다. 이날 모인 어르신은 모두 55명. 한복을 차려입고 화장도 한다. 예쁘다. 가방에 고운 빛깔 한복을 챙겨온 어르신도 있다.
 
“빨갱이가 사진이 더 예뻐!”
 
한복을 고르다 실랑이가 벌어졌다. 빨간색은 너무 튄다며 연보라 저고리를 고르는 이태곤(가명) 할아버지. “빨갱이가 사진이 더 예쁘게 나와~ 젊게 나와서 식구들이 못 알아봐” 스텝들은 억지로 빨간 저고리를 권한다. 할아버지는 쑥스러운지 헛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칠순 잔치 이후에 이렇게 화려한 건 처음이란다. 사진을 보고 아들이 못 알아볼까봐 화장하는 내내 행복한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 예쁘시다” 김옥선(가명) 할머니의 옷매무새를 만져주던 봉사자 윤연희 씨 입에서 감탄사가 나온다. 할머니 볼이 발그레 해진다. 윤 씨를 살포시 안고 “아이고 우리 애기 같네”하며 등을 토닥인다. 이런 손길이 오랜만인가 보다.
 
윤아섬 씨가 혹여나 어르신들 자세를 이리저리 잡아준다. 카메라 앞의 미소가 어색한 어르신들. 예쁘게 미소 지을 수 있게 ‘스마일~ 김치~’를 외치는 것도 윤아섬 씨 당번. 대기실에선 윤 씨 딸 주은 씨가 어르신들 얼굴에 땀을 닦아내며 메이크업에 집중한다.
 
“우리 딸들이 너무 예뻐 보여” 사진을 다 찍은 할머니들이 봉사자들에게 말한다. 그러곤 소녀처럼 까르르 웃으며 삼삼오오 손을 잡고 소사동주민센터 밖으로 사라진다. 잘생겼다는 봉사자들의 칭찬에 할아버지들은 몸 둘 바를 모른다. 어르신들 행복한 하루를 위해 힘쓰는 모두가 예쁘다. 장하다.
 
사진 찍는 해장국집 주인장
 
촬영장 안쪽에서는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허리를 세우시고요. 고개를 오른쪽으로 조금 돌리세요” 임성택 씨는 카메라 앞을 지키고 있다. 그는 프로사진가가 아니다. 부천시 송내동 시골해장국 주인장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향기네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촬영부터 보정을 거쳐 액자로 나오기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해장국집 주인장이 사진촬영으로 재능기부를 한다. 임 씨는 가게를 연지 벌써 26년 째. 가게는 24시간. 설 추석 이틀만 쉰다. 밤 9시부터 새벽 3~4시까지 가게에서 일한다. 낮엔 ‘향기네 무료급식소’에서 일한다. 급식소를 운영한 것은 2000년 1월 2일부터 17년째다. 급식소는 연중무휴. 매일 150명 이상이 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임 씨는 하루에 겨우 4~5시간 잔다.
 
처음 급식소를 시작할 때 “골프, 접대, 유흥하느라 돈 쓰느니 차라리 좋은 일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이것이 점점 커져 봄, 가을엔 무려 1천200명이 모이는 경로잔치를 열고, 매년 연말이면 1가정에 10Kg씩 350가정에 김장김치도 나눈다.
 
처음에는 급식소에 필요한 비용을 임 씨가 스스로 해결했다. 이제는 한 달에 800만 원 씩 들어가는 큰 금액을 혼자 감당하기엔 힘들다. 규모가 커질수록 주변의 도움도 늘어났다. 인근 라이브카페 가수들의 재능기부로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 8시. 송내역 남부광장에서 공연이 열린다.
 
덕분에 한 달에 100~150만 원 씩 수입이 생긴다. 그 외에 여러 곳에서 들어오는 후원이 300만 원. 나머지는 임 씨 몫이다. 그는 힘들고 어렵다고 멈추지 않았다. 필요한 부분은 채워가며 이웃을 돕고 있다.
 
12년 전 쯤. 임 씨는 급식소를 찾는 어르신들에게 영정사진을 찍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사진을 시작했다. ‘배워서 남 주자’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급식소 어르신들을 찍고 나니 다른 사람들도 찍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임 씨.
 
장애인 시설이라 지역 내에서 혐오시설이 되어버린 부평한마음공동체를 시작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면 강화, 김포 등 부천 인근 어디든 간다. 10년 동안 혼자 다녔다. 2015년부터 같이 사진하는 ‘친구들’과 함께 한다.
 
친구들은 바로 ‘향기네’에서 사진 배우는 사람들이다. ‘장수사진 봉사모임’을 만들었다. 이름은 아직 미정. 한 달에 한 번 그들은 장수사진이 필요한 어르신을 찾는다. 박삼채 복지팀장도 동주민센터 복지담당 직원들에게 ‘향기네’에 대한 ‘소문’을 듣고 요청하게 된 것. 임 씨는 “오지랖이 넓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설명한다.
 
나눔은 전염된다
 
양혜정 씨는 사진 봉사는 처음이다. 장수사진 촬영을 가는데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에 선뜻 따라나선 것. 20년 전에 잠깐 배운 메이크업. 그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었다. 양혜정 씨는 어르신들에게 화장을 해주며 이야기를 나눈다. 끊임없이. “어르신들은 아이처럼 변해요. 딸처럼 스스럼없이 대해주면 좋아해요” 혼자 살면 사람이 그립고 정이 그리워 그렇다며 어르신들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올해 44살의 양 씨는 시어머니가 95세, 친정엄마가 85세다. 친정엄마는 허리 때문에 병원에 가고 한 달 만에 치매가 온지 2년. 그래서 어르신들 마음을 잘 헤아리나보다. 사진 봉사는 처음이지만 그 녀는 ‘향기네 무료급식소’에서 매주 두 번 봉사를 한다. 지인의 SNS 타고 우연히 향기네 무료급식소를 알게 되고는 함께 하고 싶다는 쪽지를 보냈다. 인천에 사는 그녀가 부천으로 봉사를 오기 시작한지 벌써 1년이다.
 
나눔에 전염된 사람은 양혜정 씨만이 아니다. 어르신들이 사진 찍을 때 입는 한복도 임 씨 지인이 하는 한복집에서 기부했다. 화장품도 관련된 일을 하는 친구에게 ‘강제로 내 놓으라’고 했단다. 나눔과 사랑은 이렇게 이웃에게 전해져 또 다른 나눔을 만든다.
 
“봉사는 마약과 같아요” 상기된 얼굴로 봉사하며 생긴 에피소드며 감동받은 일들을 쏟아내는 양혜정 씨. 봉사는 내가 착해서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봉사하는 사람들과 서로 위안을 얻고 가족 같이 친해진다. 서로 밴드, 카톡을 하며 봉사하지 않는 날에도 친하게 왕래한다. 양 씨는 봉사가 재미난다. 그녀의 봉사는 아마도 쭉 계속될 것이다.
 
동 복지협의체, 장수사진을 기획하다
 
6월 23일 상동에서도 장수사진‘잔치’가 열렸다. 이날 장수사진 촬영에는 동 복지협의체 위원들까지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들은 장수사진 촬영에 숨은 공신이다. 상동 복지협의체 임철수 위원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르신들이 사진관에서 장수사진을 찍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봉사자들과 함께 어르신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남겨드리기 위해 장수사진을 계획했다”고 한다.
 
장수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과 발들이 열심히 뛴다. 꼭 필요한 사람이 장수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복지매니저들도 열심히 홍보한다. 각기 다른 역할과 재능이 모였다. 손발이 척척 맞는다.
 
상동주민센터 김만섭 복지팀장은 “적은 예산으로 어르신들의 만족도가 크다”고 평가한다. 액자를 받아가는 어르신들의 표정이 밝다. 김만섭 복지팀장은 액자가 고급스럽고 사진도 사진관에서 찍은 것처럼 좋다고 대만족이다. 아니, 사진관보다 더 잘 찍었다고 폭풍 칭찬이다. 소사동 박삼채 복지팀장 역시 “개인적으로 사진관에서 찍으려면 6~7만 원은 훌쩍 넘을 텐데 메이크업과 한복에 포토샵 보정까지. 사진관 그 이상”이라며 감탄한다.
 
행복한 기억, 장수사진
 
“장수사진을 찍는 것은‘행복한 일’이다. 영정사진이라면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사진 찍는다는 것은 전혀 슬퍼할 일이 아니다. 오늘 하루 사진 촬영이 행복한 기억이 되길 바란다”는 박삼채 복지팀장. 사진을 찍고 화장 덕분에 뽀얘진 얼굴로 주민센터를 나서는 어르신들. 밝고 상기된 표정을 보면 장수사진 촬영은 성공적이다.
 
부천시 7개 동 복지협의체에서는 300여 명의 어르신께 장수사진을 찍어드린다. 장소와 기간은 달라도 준비하는 맘은 같다. 사진 뒤에 숨은 사람들의 노력과 재능까지 보면 그 무엇보다 값진 사진임을 그들은 알고 있다. 심곡1동, 심곡3동, 소사동, 역곡1동, 도당동, 중1동, 상동 복지협의체는 내년에도 장수사진 촬영을 기약한다.
 
허모 복지국장은 “재능을 나누는 봉사자, 후원을 하는 후원자, 동 복지협의체와 동 주민센터가 하나 되어 장수사진을 기획하고 추진한다. 앞으로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마음들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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